31번 문제
31. 밑줄 그은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 |
①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②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하였다.
③ 군제를 개편하여 친위대와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④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였다.
⑤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후 을미사변 후 친일 성향의 제 4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었고 을미개혁이 추진되었다.
을미개혁의 결과로 ‘건양’ 연호를 사용하였다.
또한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①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1897년 대한 제국 선포 후 광무개혁을 추진하면서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하였다.
제2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군제를 개편하여 친위대와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을미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였다.
제2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제1차 갑오개혁 |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
||
| 제2차 갑오개혁 |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
||
| 을미개혁 |
삼국 간섭 등으로 박영효가 실각한 뒤, 친러 성향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다. 이 때, 명성 황후는 친러파와 연결하여 일본의 침략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고, 이에 일본은 낭인을 동원하여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을미사변 후 친일 성향의 제 4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었다. 이후 을미개혁이 추진되었다.
개항 이후 계속된 일본의 경제적, 정치적 침략과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항일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1896년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을미의병과 아관파천으로 인하여 을미개혁은 중단되었다. |
||
|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1899년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71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구석기 시대
- 71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부여
- 71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금관가야
- 71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원광 걸사표
- 71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백제의 성장 발전
- 71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신라 지증왕
- 71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신라 석탑
- 71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고구려 멸망
- 71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발해 무왕
- 71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고려 화폐
- 71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고려 역분전, 전시과
- 71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궁예
- 71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관학 진흥 정책
- 71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고려 무신 정권
- 71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대몽 항쟁
- 71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문화유산
- 71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고려 이제현
- 71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안동 지역 역사
- 71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태조
- 71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비변사
- 71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을사사화
- 71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이괄의 난, 소현 세자
- 71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조선 정조
- 71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조선 숙종
- 71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김정희
- 71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조선 후기 공노비 해방
- 71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조선 세도 정치
- 71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신미양요
- 71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외국과의 조약 체결
- 71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처용무 무형문화유산
- 71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을미개혁
- 71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통리기무아문
- 71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대한 매일 신보
- 71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독립 협회
- 71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화폐 정리 사업
- 71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 71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안중근
- 71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71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회사령 폐지, 농촌진흥운동
- 71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민립 대학 설립 운동
- 71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원산 총파업
- 71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일제 강점기 사회와 문화
- 71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한국광복군
- 71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71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공주 지역 역사
- 71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6.25 전쟁
- 71회 한능검 심화 47번 해설 – 5.10 총선거
- 71회 한능검 심화 48번 해설 – 노태우 정부
- 71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부마 민주 항쟁
- 71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김대중 정부
- 71회 한능검 심화 1번~50번 전체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