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문제
27. 밑줄 그은 ‘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선생님: 이 우표 속 그림은 국왕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거행된 진하례 모습을 그린 궁중 행사도입니다. 그림에 보이는 왕실 행사의 화려함과는 달리 안동 김씨 등 외척 세력이 세 왕에 걸쳐 60여 년 동안 권력을 잡은 이 시기에는 국왕의 실권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
① 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되었다.
② 윤지충 등이 처형된 신해박해가 일어났다.
③ 이필제가 영해 지역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켰다.
④ 경복궁 중건 비용 마련을 위해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것을 세도 정치라고 한다.
정조가 죽은 후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행사하였다.
① 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되었다.
세도 정치가 발생하기 전인 조선 인조 때 어영청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윤지충 등이 처형된 신해박해가 일어났다.
정조 때인 1791년 윤지충 등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고, 이를 계기로 이들을 처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이필제가 영해 지역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켰다.
세도 정치가 끝난 조선 고종 시기, 1863년 동학에 입교한 이필제는 자신이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1871년 말까지 진천 · 진주 · 영해 · 문경 등지에서 4번에 걸쳐 봉기를 주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경복궁 중건 비용 마련을 위해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세도 정치가 끝난 조선 고종 시기이자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기에 경복궁 중건 비용 마련을 위해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세도 정치기인 조선 철종 때 진주에서 임술 농민 봉기(1862년)가 일어났다.
이후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 조선 후기 세도 정치 |
정조의 탕평 정치로 말미암아 왕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은 결과적으로 세도 정치의 빌미가 되었다.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것을 세도 정치라고 한다. 정조가 죽은 후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행사하였다.
안동 김씨 – 순조가 11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김조순이 왕의 장인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안동 김씨는 철종 때에도 세도를 누렸다. 풍양 조씨 – 헌종 이 8세로 즉위하자, 왕의 외조부인 조만영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영조의 계비 정순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조 때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노론 벽파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신유박해를 이용하여 정조가 규장각을 통하여 양성한 인물들을 몰아냈고, 장용영을 혁파하고 훈련도감을 정상화시켜 이를 장악하였다.
정순 왕후가 죽고 벽파 세력이 퇴조하고, 순조의 장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하는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 정치가 전개되었다. 김조순은 반남 박씨와 풍양 조씨 등 일부 유력 가문의 협력을 얻어 정국을 주도하였다.
순조 말년에는 효명 세자가 대리청정을 통하여 세도가들을 견제하고 권력 집단을 결집하려 했으나 갑자가 죽음으로써 실패하였다.
헌종이 즉위하면서 헌종의 외척인 풍양 조씨 가문이 득세하였다.
철종 때에 이르러 안동 김씨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였다. 결국 안동 김씨 중심의 세도 정치는 흥선 대원군이 정국을 주도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권력 구조에서 고위직만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고, 그 아래의 관리는 언론 활동 같은 정치적 기능을 거의 잃은 채 행정 실무만 맡게 되었다. 비변사가 핵심적인 정치 기구로 자리잡았으며, 유력한 가문 출신의 몇몇이 실제 권력을 행사하였다.
19세기의 세도 정권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 가려는 능력도 지니지 못하였다. 세도 정권은 정조가 등용하였던 재야 세력인 남인, 소론, 지방 선비들을 권력에서 배제하여 사회 통합에 실패하였다. 향촌에서는 지방 사족을 배제한 채 수령이 절대권을 가지고 조세를 거두도록 하였다. 세도 정치기에는 관직이 매매되는 등 비리가 만연하였으며, 탐관오리들의 부당한 조세 수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더욱이 자연 재해가 잇따르고 기근과 질병이 널리 퍼졌으며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였으나 농민의 조세 부담은 더욱 무거워져 농촌 사회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세도 정치하에서는 정치의 도리가 지켜지지 않고, 관리의 기강이 무너지면서 관직을 사고 파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감사 자리는 보통 5만~6만 냥, 수령 자리는 2만~3만 냥 정도에 거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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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군사 제도 |
임진왜란 초기에 어이없는 패전을 경험한 조정에서는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왜군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인 편제와 군사 훈련 방식을 모색. 그 결과, 훈련도감을 설치 훈련도감의 군병은 삼수병(포수, 사수, 살수)으로 편성, 이들은 장기간 근무를 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 상비군으로서, 의무병이 아닌 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진 군인
인조 때 이괄의 난과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등이 설치되었고, 숙종 때에 금위영이 추가로 설치되어 17세기 말에는 5군영 체제가 갖추어졌다.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조선 초기에 실시되던 진관 체제는 많은 외적의 침입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에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제승방략 체제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제승방략 체제가 임진왜란 중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진관 체제를 복구하고 속오법에 따라 군대를 편제하는 속오군 체제로 정비하였다. 속오군은 위로는 양반에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향촌 사회를 지키다가 적이 침입해 오면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양반이 노비와 함께 속오군에 편제되는 것을 회피함에 따라 상민과 노비들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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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천주교의 전파 |
천주교는 17세기에 중국 베이징의 천주당을 방문한 우리 나라 사신들에 의하여 서학으로 소개되었다.
천주교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당시 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고심하던 남인 계열의 일부 실학자들이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래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지었으나,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18세기에 한글로 옮겼다.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서양인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후로 신앙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점차 교세가 확장되고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유교의 제사 의식을 거부하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 부정과 국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사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천주교의 교세가 커진 것은 세도 정치로 말미암은 사회 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 내세 신앙 등의 교리가 일부 백성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정조 때인 1791년 윤지충 등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고, 이를 계기로 이들을 처형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여 노론 벽파가 집권하자, 천주교에 대탄압이 가해졌다. 1801년 이승훈, 정약종 등 3백여 명이 처형되었다. 정약용은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박해 소식과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리기 위해 중국 북경 교구장 구베아에게 보내려고 했던 밀서가 발각되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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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켜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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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철종 때에 진주에서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1862년)는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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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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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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