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 문제
14. 다음 서술형 평가의 답안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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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형 평가
○ 이의방은 평소 자기를 핍박하는 이고를 미워하였는데, 이고가 난을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살해하였다. ○ 서경유수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두경승이 향산동 통로역에서 반란군을 패퇴시켰다. ○ 최우가 정방(政房)을 자기 집에 설치하고 문사를 선발하여 여기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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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② 청해진을 거점으로 국제 무역이 이루어졌다.
③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 등이 유포되었다.
④ 망이·망소이의 난 등 하층민의 봉기가 발생하였다.
⑤ 역관들이 시사(詩社)에 참여해 위항 문학 활동을 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고려 무신 정권기에 대한 내용이다.
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후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청해진을 거점으로 국제 무역이 이루어졌다.
통일 신라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 등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망이·망소이의 난 등 하층민의 봉기가 발생하였다.
1176년 무신 정권기,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역관들이 시사(詩社)에 참여해 위항 문학 활동을 하였다.
조선 후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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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신분 상승 운동 |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얼과 중인 등 중간 계층의 역할도 커졌다.
서얼에 대한 차별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란으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정부가 납속책을 실시하고 공명첩을 발급하자, 서얼은 이를 이용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술직 중인들은 주로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인 중에서도 역관들은 청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서학을 비롯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여, 성리학적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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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신라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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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사회 불안의 심화 |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다. 또한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말세의 도래, 왕조의 교체, 변란의 예고 등 근거없는 낭설이 횡행하여 민심을 혼란시켰다. 여기에 무격 신앙이나 미륵 신앙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현세에서 얻지 못하는 행복을 미륵 신앙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서민을 현혹시켜 끌어모으는 무리도 나타났다.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은 이 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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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
허균의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등장했다. 세책가에서 도서를 대여했다.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런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였다.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나타났다.
역관 등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였다.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다.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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