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 문제
28. (가) 사건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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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궤를 비롯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였다.
② 홍경래 등이 난을 일으켜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③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되었다.
④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유역에서 통상을 요구하였다.
⑤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1871년).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① 의궤를 비롯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였다.
병인양요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홍경래 등이 난을 일으켜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1811년 세도 정권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홍경래의 난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유역에서 통상을 요구하였다.
신미양요가 일어난 원인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박해 소식과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리기 위해 중국 북경 교구장 구베아에게 보내려고 했던 밀서가 발각되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1871년).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퇴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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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
1866년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였다(병인박해).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1866년).
강화도 문수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전투를 벌였고,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가 항전하였다. 조선군의 저항으로 사상자가 생긴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물러났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의궤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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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 |
19세기의 세도 정치하에서 국가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탐관오리의 부정과 탐학은 끝이 없었다. 삼정의 문란으로 극도에 달한 수령의 부정은 중앙 권력과도 연계되어 있어 암행어사의 파견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농촌 사회가 피폐하여 가는 가운데 농민의 사회 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갔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권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일으킨 봉기였다.
이들은 처음 가산에서 난을 일으켜 선천, 정주 등을 별다른 저항없이 점거하였다. 한때는 청천강 이북 지역을 거의 장악하였으나, 정주성 싸움에서 패하여 5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의 농민이 하나로 뭉쳐 탐관오리의 착취와 지방 차별에 반대한 농민 항쟁이었다. 이 난은 평안도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났고, 지도자들이 농민층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일 개혁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 뒤에 발생한 임술 농민 봉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부정과 탐학은 시정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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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화비 건립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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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천주교의 전파 |
천주교는 17세기에 중국 베이징의 천주당을 방문한 우리 나라 사신들에 의하여 서학으로 소개되었다.
천주교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당시 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고심하던 남인 계열의 일부 실학자들이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래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지었으나,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18세기에 한글로 옮겼다.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서양인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후로 신앙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점차 교세가 확장되고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유교의 제사 의식을 거부하자,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 부정과 국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사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천주교의 교세가 커진 것은 세도 정치로 말미암은 사회 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 내세 신앙 등의 교리가 일부 백성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정조 때인 1791년 윤지충 등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고, 이를 계기로 이들을 처형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여 노론 벽파가 집권하자, 천주교에 대탄압이 가해졌다. 1801년 이승훈, 정약종 등 3백여 명이 처형되었다. 정약용은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박해 소식과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리기 위해 중국 북경 교구장 구베아에게 보내려고 했던 밀서가 발각되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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