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후삼국 통일

10번 문제

1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점]

한국사 동영상 제작 계획안

다시 하나로, 민족의 재통일을 이루다

◯학년 ◯반 ◯모둠

  • 제작 의도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주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 장면별 구성 내용

#1. 신숭겸,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다

#2. 왕건,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치다

#3. 견훤, 금산사에서 탈출하여 고려에 귀순하다

#4. (가)

#5. 왕건,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에 승리하다

① 안승, 보덕국왕으로 책봉되다

② 궁예,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다

③ 경순왕 김부, 경주의 사심관이 되다

④ 윤충,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⑤ 흑치상지, 임존성에서 부흥군을 이끌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후삼국 시기는 일반적으로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900년부터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까지이다.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켰다(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하였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했다.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켰다.

935년 6월 견훤이 고려에 귀순하였다.

935년 11월, 통일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였다. 태조 왕건은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였다.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를 당하고 후백제는 멸망하였다.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이뤘다.

 

① 안승, 보덕국왕으로 책봉되다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가 멸망했다.

이후 고구려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받든 검모잠과 고연무 등은 고구려의 유민을 모아 부흥 운동을 전개했다.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궁예,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다

901년, 궁예는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이후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경순왕 김부, 경주의 사심관이 되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윤충,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642년 백제 의자왕 때 윤충이 경남 합천 대야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흑치상지, 임존성에서 부흥군을 이끌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였다.

이후 복신과 도침은 주류성,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군사를 일으켜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 935년 6월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5년 11월,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백제, 고구려
부흥 운동
  • 백제 부흥 운동

복신과 흑치상지, 도침 등은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

복신과 도침은 주류성,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군사를 일으킴

200여 성을 회복하고 사비성과 웅진성의 당군을 공격하면서 4년간 저항하였으나,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부흥 운동은 좌절

663년, 왜의 수군이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백강 입구까지 왔으나 패배

 

  • 고구려 부흥 운동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받든 검모잠과 고연무 등은 고구려의 유민을 모아 부흥 운동을 전개

검모잠은 한성, 고연무는 오골성을 근거지로 삼음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

백제
의자왕
  • 윤충을 보내 신라의 대야성(642년)을 비롯한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기 위해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을 공격하였다.
  • 백제는 내부적으로 정치 질서의 문란과 지배층의 향락으로 국가적 일체감을 상실였고, 결국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했다(660년).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