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번 문제
29. (가)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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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최혜국 대우를 최초로 규정하였다.
② 통감부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③ 천주교 포교 허용의 근거가 되었다.
④ 재정 고문을 두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⑤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882년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① 최혜국 대우를 최초로 규정하였다.
서양과 최초로 맺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고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통감부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1905년 11월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천주교 포교 허용의 근거가 되었다.
1886년에 체결된 조불(프랑스) 수호 통상 조약으로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재정 고문을 두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1904년 8월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체결로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외국과의 조약 체결 |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
서양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고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는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이 조약으로 인해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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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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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국권 피탈 |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1902년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제1차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이후, 1903년 러시아가 압록강에 위치한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대한 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인천항과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러·일 전쟁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강요하였다. 이때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였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은 후,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 나라 내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은 연호를 광무에서 융희로 바꿨다.
이어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다.
일본은 1909년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찰권을 빼앗았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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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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