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 문제
16.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1점]
| ○ 당시 응방·겁령구 및 내수(內竪) 등의 천한 자들이 모두 사전(賜田)을 받았는데, 많은 경우는 수백 결에 이르렀다. 일반 백성을 유인하여 전호로 삼고, 가까운 곳에 있는 민전에서는 모두 수조하였으므로 주와 현에서는 부세가 들어올 바가 없게 되었다.
○ 공주가 장차 입조(入朝)할 예정이었으므로, 인후와 염승익에게 명하여 양가의 자녀로서 나이가 14~15세인 자들을 선발하였고, 순군(巡軍)과 홀적(忽赤) 등으로 하여금 인가를 수색하게 하였다. 혹 밤중에 침실에 돌입하거나 노비를 포박하여 심문하기도 하였으니, 비록 자녀가 없는 자라 할지라도 깜짝 놀라 동요하게 되었다. 원망하며 우는 소리가 온 거리에 가득하였다. |
①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②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
③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④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초조대장경이 조판되었다.
⑤ 기근에 대비하기 위하여 구황촬요가 간행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의 원 간섭기 때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했다.
또한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갔다.
①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고려 원 간섭기 이전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은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
고려 원 간섭기 이전 무신 정권기인 1198년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고려 원 간섭기 때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초조대장경이 조판되었다.
고려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기근에 대비하기 위하여 구황촬요가 간행되었다.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원의 내정간섭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
|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 고려 교육 기관 |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
|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 고려 대장경 간행 |
고려에서는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 체계가 정비되면서 불교에 관련된 서적을 모두 모아 체계화하는 대장경이 편찬되었다. 경⋅율⋅논의 삼장으로 구성된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의가 높은 유산이다.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의천은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속장경(교장)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여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
| 조선 명종 |
중종이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사림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다툼에 윤임이 제거당하고, 사림 세력 역시 정계에서 밀려났다(1545년).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3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은 약조를 지키지 않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 특히, 1555년(명종 10)에는 왜인이 70여 척의 배를 몰고 전라남도 연안 지방을 습격해 왔다. 이후 일본과의 교류는 일시 단절되었다.
1556년 명종 때 직전법이 폐지되어 수조권 지급 제도가 없어졌다.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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