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 문제
33. ㉠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 |
① 학도 지원병을 독려하는 지식인
② 금난전권 폐지에 반대하는 시전 상인
③ 근우회가 주최하는 강연에 참여하는 여성
④ 두모포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일본 군인
⑤ 근대 학문을 가르치는 한성 사범 학교 교사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근대 시기인 1899년 우리 역사상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① 학도 지원병을 독려하는 지식인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금난전권 폐지에 반대하는 시전 상인
조선 정조 시기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근우회가 주최하는 강연에 참여하는 여성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누어져 있던 여성 단체들은 1927년 신간회의 창립을 계기로 자매 단체인 근우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두모포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일본 군인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과 조일 무역 규칙에 따라 일본과의 무관세 무역이 이루어졌다.
1878년 무관세 무역의 부당성과 관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조선 정부는 두모포 왜관에 해관을 설치하여 관세를 징수하도록 했다.
이에 일본은 무력시위를 하면서 관세 징수를 중지하라고 압박했다. 결국 조선은 굴복하게 되고 두모진 해관을 폐쇄하게 된다.
1883년이 되어서야 조일통상장정을 통해 일본과의 관세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근대 학문을 가르치는 한성 사범 학교 교사
1894년 제2차 갑오개혁 때 조선 정부에서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후에, 1895년 한성 사범 학교을 설립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1885년 서울-인천, 서울-의주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1884년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근대적 우편 제도를 실시하려 했으나 갑신정변 이후 중단되었다. 정부가 우체사를 설립하면서 우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1900년부터는 국제 우편 업무(만국 우편 연합 가입)도 실시하였다.
1898년 경운궁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덕률풍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전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전기 회사인 한성 전기 회사가 설립되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 사업을 주도하였다. 묘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1899년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경인선(1899년),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철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제중원은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건의로 정부가 관립 의학교와 광제원(1900년)을 설립하였는데, 광제원은 대한 의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883년 박영효의 주도로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1883년 기기창에서 서양 무기를 제조하였다.
1883년 전환국에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였다.
독립문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건립되었다.
르네상스식의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1898년 중세 고딕식의 건물인 명동 성당이 세워졌다.
|
|||||||||||||||||||||||
| 일제의 국가 총동원법 |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38년 지원병제, 1943년 학도 지원병제, 1944년 징병제 시행.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 국민 징용령,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 시행.
일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놋그릇, 놋대야, 수저, 농기구, 교회와 사찰의 종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일제는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시행하였다.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
||||||||||||||||||||||
|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
||||||||||||||||||||||
1924년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1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졌다. 이를 배경으로 분열된 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자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났다.
1926년 중국 북경에서 안창호의 주도로,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가 창립되었다. 이로 인해 만주에서 3부 통합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내에서는 최린, 이광수 등이 자치 운동(자치론)을 전개하며 일제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이상재, 안재홍 등의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였고, 나아가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여 민족 운동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1925년 치안 유지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진영과의 연대하고자 하였다.
치안 유지법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은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동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신간회 설립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최대 규모의 합법적인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이상재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신간회는 민족의 단결과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기회주의자를 배격하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내세웠다.
신간회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 근우회였다. 근우회는 김활란 등이 중심이 되어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으로 조직되었고, 여성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새생활 개선을 행동 강령으로 하였다. 근우회의 창립이념과 활동의 기본 방향은 강령에 제시된 “조선 여성의 단결과 지위향상”이다.
신간회는 합법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식민지 교육 반대, 타협적 정치 운동 반대 등을 주장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비판하였다.
신간회는 광주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전국적인 민중 대회를 준비하였다.
코민테른은 중국에서 제1차 국공 합작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계열과의 협동 전선 해체를 지시하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신간회 해소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나, 1931년에 열린 전체 대회에서 신간회를 해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신간회의 결성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극복하여 민족 협동 전선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
1883년에 원산(덕원부)에 관민이 합심하여 기금을 모아 원산 학사을 설립하고 최초로 근대 교육을 했다.
1883년에 정부는 통역관 양성을 위한 동문학을 설립하였다.
1886년 정부는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좌원과 우원을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도 정부의 협조를 얻어 배재 학당, 이화 학당 등을 세워 신학문과 서양 문화 및 영어 등을 가르쳤다. 이화 학당은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으로 건립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정부에서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후에, 한성 사범 학교(1895년), 외국어 학교, 소학교 등을 차례로 세워 인재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70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청동기 시대
- 70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동예
- 70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백제 한성 함락
- 70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고구려 소수림왕
- 70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삼국 도교
- 70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원효
- 70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발해
- 70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최치원
- 70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 70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후삼국 통일
- 70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 70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승려
- 70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숙종
- 70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무신정변
- 70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강화 천도, 삼별초의 항쟁
- 70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원 간섭기
- 70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조선 태종
- 70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김종서
- 70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성종
- 70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조광조, 현량과
- 70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임진왜란
- 70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불교 문화유산
- 70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대동법
- 70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조선 정조
- 70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조선 후기
- 70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박지원
- 70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김홍도
- 70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병인양요, 신미양요
- 70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70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갑신정변
- 70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덕수궁
- 70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정미의병
- 70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근대 문물의 수용
- 70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서간도
- 70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3.1 운동
- 70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70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대종교
- 70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1920년대 무장 독립 전쟁
- 70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일제 강점기 예술
- 70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70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조소앙
- 70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김구, 남북 협상
- 70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통일을 위한 노력
- 70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 70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유신 헌법, 제8차 개헌
- 70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김영삼 정부
- 70회 한능검 심화 47번 해설 – 노무현 정부
- 70회 한능검 심화 48번 해설 – 사회 보장 제도
- 70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김대중 정부
- 70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대구, 광주 지역 역사
- 70회 한능검 심화 1번~50번 전체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