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일제 강점기 예술

39번 문제

39.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관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는 백정

②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는 관리

③ 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을 보는 관객

④ 전차 개통식에 참여하는 한성 전기 회사 직원

⑤ 카프(KAPF)를 형성하여 활동하는 신경향파 작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일제 강점기 영화계에서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년)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① 관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는 백정

일제 강점기 이전인 근대 시기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조선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는 관리

1894년 제2차 갑오개혁 때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을 보는 관객

1908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졌고, 은세계, 치악산 등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전차 개통식에 참여하는 한성 전기 회사 직원

1899년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카프(KAPF)를 형성하여 활동하는 신경향파 작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종교
    •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 대종교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 원불교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신교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조선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문학
    • 1910년대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 1920년대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 1930년대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이육사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 예술
    • 음악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애리수, 황성옛터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텅 빈 밤과 서정
윤심덕, 사의 찬미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
고복수, 타향살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의 짙은 향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항구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별과 눈물의 정서

 

    • 미술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 연극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토월회는 1923년 5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승희·김복진·김기진·이서구·박승목·김을한·이제창 등이 조직하였다.

    • 영화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년)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 기타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독립 협회
  • 배경 – 아관파천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

  • 열강의 이권 침탈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국가의 자주성은 손상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졌으며, 집권층은 친러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외세의 침투가 계속되어 나라의 자주권이 크게 위협을 당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 독립 협회 창립

갑신정변의 주동자로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이 귀국하였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을 민중에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 협회를 창립하였다(1896년).

  • 독립 협회 활동
    • 독립문과 독립관

독립 협회는 첫 사업으로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영은문 자리에 자주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하는 등 국민의 자주 독립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독립 협회는 독립관에서 교육과 산업 진흥, 자주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다.

 

  • 자주 국권 운동
    • 만민 공동회

이 무렵, 러시아의 침략적 간섭은 여전하였다.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한러 은행 설립, 절영도 조차 등 이권 침탈을 시도하였다. 또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져 갔다.

이에 독립 협회 회원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대회인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1898년).

만여 명의 시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종로 광장에서 열린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대한의 자주 독립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여 이를 정부에 건의하였다.

이후, 독립 협회는 수시로 만민 공동회를 열고, 외국의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 및 토지 조차 요구 등에 대항하여 국권과 국익을 수호하려는 자주 국권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결국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철수시키고, 절영도 조차 요구를 철회하였다.

 

  • 자주 민권 운동
    • 국민 참정권 운동

자주 국권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 자유 민권 운동도 전개되었다.

나아가,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여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국민 참정권 운동도 전개하였다.

그 후, 독립 협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4천여 명의 회원을 가진 민중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하여, 의회 설립에 의한 국민 참정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독립 협회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하여 보수적 내각을 퇴진시키고, 박정양의 진보적 내각을 수립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 자강 개혁 운동
    • 관민 공동회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열강의 이권침탈 방지를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였다.

 

    • 헌의 6조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및 정치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았다.

관민 공동회의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하여 시행할 것.

3. 국가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에 따를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 중추원 관제 반포(1898년)

독립 협회는 정부와 협상을 벌여 관선 의원과 민선 의원을 같은 수로 하는 의회식 중추원 관제를 반포하게 하여,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회가 설립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 독립 협회의 해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은 고종에게 독립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박정양 내각을 무너뜨리고 독립 협회도 해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황국 협회를 이용하여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였고, 결국은 병력을 동원하여 민중들의 정치 활동을 봉쇄하였다.

황국 협회(皇國協會)

전국의 보부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보수 세력은 이들에게 만민 공동회가 열리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게 한 다음, 이를 빌미로 독립 협회를 해산하였다.

 

  • 독립 협회의 의의

독립 협회의 활동은 민중을 개화 운동과 결합시켜 근대적 민중 운동을 일으켰고, 민중에 의한 자주적인 근대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근대
문예와 종교
  • 문예

최남선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되었다.

    • 소설

순 한글을 사용하여 언문 일치의 문장으로 쓰여진 신소설이 등장하였다.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자유종 등이 있다.

    • 연극

1908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졌고, 은세계, 치악산 등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 종교
    • 개신교

개신교는 1880년대에 서양 선교사의 입국을 계기로 교세를 넓혀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프랑스와의 수교로 포교의 자유를 인정받은 이후 소학교, 고아원, 양로원 등을 세웠으며, 경향신문을 발행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한용운이 조선 불교 유신론을 내세우며 불교의 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주장하였다.

    • 유교

유교에서는 박은식이 유교 구신론을 제창하면서 근대 교육과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 대종교

나철, 오기호 등은 단군 신앙을 발전시켜 대종교를 창시하였다.

    • 천도교

대한 제국 시기에 이용구 등 친일파가 일진회를 조직하고 동학 조직을 흡수하려 하자,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동학의 정통을 계승하여 민족 종교로 발전시켰다.

천도교는 만세보라는 민족 신문을 발간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다.

근대 문물의
수용

  • 전신

1885년 서울-인천, 서울-의주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 우편

1884년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근대적 우편 제도를 실시하려 했으나 갑신정변 이후 중단되었다.

정부가 우체사를 설립하면서 우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1900년부터는 국제 우편 업무(만국 우편 연합 가입)도 실시하였다.

 

  • 전화

1898년 경운궁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덕률풍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전기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전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전기 회사인 한성 전기 회사가 설립되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 사업을 주도하였다.

묘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 전차

1899년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 철도

경인선(1899년),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철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 의료 시설
    • 광혜원(제중원) → 세브란스 병원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제중원은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광제원 → 대한의원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건의로 정부가 관립 의학교와 광제원(1900년)을 설립하였는데, 광제원은 대한 의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 근대 시설
    • 박문국

1883년 박영효의 주도로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 기기창

1883년 기기창에서 서양 무기를 제조하였다.

    • 전환국

1883년 전환국에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였다.

 

  • 건축
    • 독립문

독립문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건립되었다.

 

    • 덕수궁 석조전

르네상스식의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 명동 성당

1898년 중세 고딕식의 건물인 명동 성당이 세워졌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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