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조선 여진과의 관계

11번 문제

11. (가)에 대한 역대 왕조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2점]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전지하기를, “동북 지역의 경계는 공험진(公嶮鎭)으로 삼았다는 말이 전하여 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 고려사에 이르기를, ‘윤관이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고 하였다. 지금 듣건대 선춘점(先春岾)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 공험진이 선춘점의 어느 쪽에 있는가.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 윤관이 (가)을/를 쫓고 9성을 설치하였는데, 그 성이 지금 어느 성이며, 공험진의 어느 쪽에 있는가.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 듣고 본 것을 아울러 써서 아뢰라.”라고 하였다.

① 신라 문무왕 때 청방인문표를 보내어 인질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② 고려 우왕 때 나세, 심덕부 등이 진포에서 크게 물리쳤다.

③ 고려 창왕 때 박위를 파견하여 근거지를 토벌하였다.

④ 조선 태종 때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회유하였다.

⑤ 조선 광해군 때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무역을 재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107년 고려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하였다.

 

① 신라 문무왕 때 청방인문표를 보내어 인질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신라 문무왕 때 당나리에 청방인문표를 보내어 김인문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고려 우왕 때 나세, 심덕부 등이 진포에서 크게 물리쳤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았다.

최영, 이성계 등이 나서서 왜구를 토벌하였고, 최무선은 화포를 사용하여 진포 대첩에서 왜구를 격퇴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고려 창왕 때 박위를 파견하여 근거지를 토벌하였다.

고려 창왕 때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선 태종 때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회유하였다.

조선은 여진족의 귀순을 장려하기 위하여 관직을 주거나 정착을 위한 토지와 주택을 주어 우리 주민으로 동화시켰다.

또, 사절의 왕래를 통한 무역을 허용하였고, 국경 지방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두고 국경 무역을 허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조선 광해군 때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무역을 재개하였다.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년 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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