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신민회

34번 문제

34.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어요.

②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어요.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어요.

④ 안창호, 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로 조직하였어요.

⑤ 국문 연구소를 세워 한글의 문자 체계를 정리하였어요.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신민회에 대한 내용이다.

 

①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어요.

1919년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11월).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는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였어요.

1897년 러시아가 저탄소(석탄 저장소) 설치를 위해 절영도의 조차를 요구하자,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저탄소 철거까지 주장하여 마침내 러시아의 요구를 좌절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어요.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안창호, 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로 조직하였어요.

신민회는 1907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를 망라하여 조직된 비밀 결사였다.

안창호, 양기탁 등을 지도부로 하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1908년), 정주에 오산 학교(1907년)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또한 신민회는 평양과 서울에 설립된 태극 서관에서 계몽 서적을 출판하였다. 또한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워 민족 산업의 육성에도 힘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국문 연구소를 세워 한글의 문자 체계를 정리하였어요.

1907년 국문 연구소가 만들어져 주시경, 지석영 등의 주도로 국문의 정리, 문법과 국어의 이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년 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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