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33번 문제

33. 밑줄 그은 ‘조약’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영어, 중국어 안내문을 추가한 표석 설치

아나운서: 청의 알선으로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 체결된 장소에 새로운 표석이 설치되었습니다. 기존 한글 안내판에 영어와 중국어 안내문을 추가한 이번 표석 설치는 개항기 대외 관계와 관련한 중요한 장소를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① 부산, 원산, 인천 항구가 개항되었다.

② 김홍집이 국내에 조선책략을 소개하였다.

③ 민영익을 대표로 한 보빙사가 파견되었다.

④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⑤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

 

① 부산, 원산, 인천 항구가 개항되었다.

1876년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김홍집이 국내에 조선책략을 소개하였다.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민영익을 대표로 한 보빙사가 파견되었다.

조선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년 제6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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