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임술 농민 봉기

27번 문제

27.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진주 안핵사 박규수에게 하교하기를, “얼마 전에 있었던 진주의 일은 전에 없던 변괴였다. 관원은 백성을 달래지 못하였고, 백성은 패악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였다. 누가 그 허물을 책임져야 하겠는가. 신중을 기하여 혹시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게 하라. 그리고 포리(浦吏)*를 법에 따라 처벌할 경우 죄인을 심리하여 처단할 방법을 상세히 구별하라.”라고 하였다.

*포리(浦吏): 관아의 물건을 사사로이 써버린 아전

① 홍경래, 우군칙 등이 주도하였다.

②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③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④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일어났다.

⑤ 윤원형 일파가 정국을 주도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62년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① 홍경래, 우군칙 등이 주도하였다.

1811년 세도 정권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내정 간섭하자, 제2차 농민 봉기하여 외세를 몰아 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1894년 11월 남접 농민군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 집결하였다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일어났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갑신정변).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윤원형 일파가 정국을 주도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조선 인종이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였다.

이후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윤임이 제거당하는 을사사화가 발생했다(1545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년 제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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