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장수왕의 한성 함락

6번 문제

6. 다음 상황이 나타난 배경으로 옳은 것은? [3점]

연흥 2년에 여경[개로왕]이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렸다. “신의 나라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우호가 돈독하였는데, 고구려의 선조인 쇠[고국원왕]가 우호를 가벼이 깨뜨리고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우리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신의 선조인 수[근초고왕]는 군대를 정비하고 공격하여 쇠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다니, 이후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점점 강성해져 침략하고 위협하니 원한이 쌓였고 전쟁의 참화가 30여 년 이어졌습니다. …… 속히 장수를 보내 구원하여 주십시오.”

 – 『위서』 –

①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승리하였다.

② 동성왕이 나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③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④ 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패배하였다.

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을 추진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472년 백제 개로왕은 남진 정책을 추진하는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하였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되었다.

 

①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승리하였다.

612년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군을 물리쳤다(살수 대첩).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동성왕이 나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493년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백제 동성왕과 신라 소지왕은 혼인 동맹을 맺어 나·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554년 백제 성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패배하였다.

660년 김유신이 지휘한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끈 백제의 결사대를 격파한 후 김유신의 신라군과 소정방의 당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을 추진하였다.

427년 고구려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한 후 남진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년 제6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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